다단계판매리포트

 


어느날의 실갱이 [엔지니어는 왜 안티를 포기했는가. 4]

[Photo] '달동네' 고정민 작품
원래 서울에서도 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보니 저희동네는 항상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트럭에 물건을 싣고 마이크로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 소리, 가끔씩은 누군가가 티격태격 다투는 소리까지, 항상 조용하다기 보다는 시끌벅적한 곳입니다. 정부에서는 재개발 계획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언제 이루어질지는 모르는 그런 동네지요.

그런데 제가 홈페이지 작업에 막바지 박차를 가하고 있던 어느날의 일입니다. 골목에서 어떤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언성을 높이시는게 들렸습니다.









아니! 왜 남이 붙여놓은것을 자꾸 떼 내고 그러요?

이것봐요 아줌마! 도데체 이건 왜 붙이고 다니는거요? 이딴 광고전단지 다 쓰레기만 만드는거 몰라서 그래요?




이야기를 듣자마자 저는 무슨 내용인지 파악을 했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집앞에 수북히 쌓이고, 골목의 젓봇대마다 나붙는 광고 전단지때문에 벌어진 실갱이였던 것입니다. 보나마나 아주머니는 광고 전단지를 붙이는 일을 하고 계셨고, 아저씨가 그걸 떼어버리자 두분의 실갱이가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집안에서 두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저는 내심 '고것 참 쌤통이다'하며 고소해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또한 평소부터 집앞 이곳저곳에 널부러지는 광고전단지가 못마땅했기 때문입니다. 두분의 대화는 계속되었습니다.




아따! 아저씨! 나는 이걸 붙여야 먹고산단 말이요.... 아저씨가 왜 내 뒤를 따라다님서 내가 붙인것을 띠고 난리요? 이동네가 다 아저씨 집이라도 되는것이요?

아줌마도 생각을 해 보세요! 지금 집집마다 붙어있는 광고지 저것들 다 쓰레깁니다. 비에 젓어서 여기저기 널부러지기라도 하면 치우는게 얼마나 짜증나는지 아십니까?

음메.... 아무리 그래도 그렇제... 여자가 먹고살라고 붙이고 댕기는것을 남자가 좁쌀만이로 하나씩 띨 수 가 있소!

아니 이 아주머니가 무슨소리를 하는거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붙인것을 잘못했다고는 못할망정 되려 나보고 뭐라하네. 허! 이것참....

아이고메... 아저씨가 몰라서 그러제.. 내가 이것들 다 붙이고 나믄.... 내가 이것을 다 붙였능가 않붙였능가 나중에 다 확인 한단말이요.... 무슨 남자가 좁쌀만이로 여자 하는일 갖고 그러요....




처음에는 고소해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듣고있던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얼굴이 굳어져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아주머니의 걸쭉한 사투리는 바로 제 어머니의 목소리... 바로 제 고향 사투리였기 때문입니다. 그 아주머니의 사투리에서 제 어머니를 떠올린 순간, 더이상 고소해 할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가 않더군요. 뭔가에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 뿐이었습니다. 두분의 실갱이가 끝나고도 한참동안 저는 머릿속이 텅 빈채로 있었습니다.

감정적으로 동화되는것, 그것이 의미하는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다단계판매에 함께하자고 애걸하다시피 호소하던 사람의 이상함이 그때 이해가 되더군요. 다단계에 빠진 딸을 구하려다 함께 빠져든 아버지의 마음도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고것참 쌤통이다' 며 고소해하던 제 마음이 처량함과 애처로움으로 바뀌는게 긴 시간이 아니라 한순간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저는 그분들을 미워하던 제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인지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다  하루하루의 삶을 위해 그렇게 애처로운 모습으로나마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내가 그들을 미워할 수 있는가....  그사람들이 내 어머니 아버지였다고 해도 그냥 미워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 미워할 수 있는가 가 아니라 미워해도 되는것이가...... 이런 의문들을 되새기면 되새길 수록 미워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저는 더이상 안티이기를 포기합니다.  
[엔지니어]
2003-10-04 2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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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2003-10-05
16:41:10

안티엠엘엠을 2001년 부터 드나들었던 안티였습니다.

처음엔 친한 친구가 뭔가에 씨운듯한 분위기로 다단계에 빠져드는 걸 보고는 이를 막아보려 안티엠엘엠을 찾게 되었죠. 만나면 언제나 마음편하고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마치 약물에라도 취한듯이 몽롱한 눈빛과 생전 처음보이는 가식적인 웃음으로 자기의 다운이되어 물건을 구매하길 강권하는 모습은 가히 충격이었으니까요...

특정한 이름으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장문의 글도 올려보기도 했고, 안티엠엘엠 사이트가 점차 관리되지 않으며 찾아오는 발길이 줄고 마침내는 사라졌을때는 왠지 모를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미 한참전에 흘러가버린 다단계에 대한 타는듯한 적개심때문이 아니라, 오래도록 정든 커뮤니티 하나가 사라진듯한 아쉬움 때문이었죠.

이제 이곳을 찾고나니 반가움도 느끼고, 또 왜 그렇게 안티엠엘엠이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됐었는지 알게된것도 같습니다. 안티이되 안티가 아닌 이 사이트를 생각중이셨군요...
이 사이트를 만드신 의의(?)를 읽어 보았습니다. 느껴지는건 사람에대한 포용심이 한결 커졌다는 겁니다.^^ 이 사이트라면 보다 논리적이고 차분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는곳 그런곳이 될것같다는 느낌입니다.
엔지니어님, 님도 늙으셨군요...하하하(좋은 의미 입니당 -_-;;)

설득이나 훈계가 아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무엇이 "진실"인지를 "공감"하는곳,
그것이 이 사이트의 취지라면, 역시 가장 바람직한 접근법일것이라고 생각되며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의 여부는 별개라 하더라도)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실 꿈을 이루자! 인류의 최후,최강 마케팅!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뇌이는 앵무새를 대하며, 정신 차려라! 안된다면 안되는줄 제발 좀 알아들어라! 라고 되풀이 하는 짓이라면 저, 또는 우리는 그동안 너무도 많이 해봤으니까요... 그러는 사이 어느듯 저 역시 "마음"이라는것은 잊어버린채 녹음기가 되버렸던것은 아닌지 반성도 되는군요..

사실 제가 안티엠엘엠을 드나들며 한가지 마음에 걸렸던것은 엔지니어님의 과격하다 할 만큼 강한 말투였습니다. 엔지니어 님의 취지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말 할 필요는 없지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안티엠엘엠에 도대체 다단계가 뭔대 내 형제, 친구가 나를 이렇게 끌어들이려 하는가? 를 조심스럽게 질문했던 분중에는 엔지니어님의 답변에 충격을 받고 혹은 화를 내면서 사라지신 분도 꽤 됐었지요...^^

"아이가 몸에 좋은 약을 쓰다고 먹지 않으려 합니다. 그럼 이 약을 아이에게 먹이지 않는것이 좋은 부모일까요? 따끔하게 때려서라도 억지로 먹이는게 좋은 부모일까요?
아이도 나중에 올바른 생각을 하게 되면 억지로 때려서 먹여준걸 고마워할겁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흔히 쓰는 논리이죠...

하지만, 우리는 역시 이같은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반가운 마음에 주제넘은 소리를 주절주절 쓰고 말았군요. 죄송합니다.
모쪼록 새로운 사이트와 엔지니어님의 앞에 좋은 일이 가득하길 빌겠습니다....^^



엔지니어
2003-10-05
19:03:07

 
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예전에 타오르는 열정으로 게시판에서 많은 분들과 때로는 욕설까지도 석어가며 논쟁을 벌이던 시기가 떠오르는군요. 고양이님 말씀대로 antimlm 을 운영하면서 문체가 너무 과격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많은 지적을 받고 제 자신도 그러한 점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때는 감정적으로 다단계 판매원 분들과 분명한 선을 그어놓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막상 글을 써놓고 보면 누군가가 상처받을 말들을 남기곤 했었습니다. 더군다나 분노에 찬 글쓰기를 하다보니 아무런 죄없는 초보 방문자들의 어설픈 질문들에도 화를내는 실수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나마 그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고양이님의 말씀대로 저는 이곳을 안티다단계 사이트가 아니라 사업자 분들도 부담없이 들어와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타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은 공간, 그것이 제가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전의 홈페이지를 기억하시는 분을 뵙게되니 많은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다단계가뭐야
2006-05-29
21:22:15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정보의 공유....!
사실이라는것 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도 아는만큼 보인다고 내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어 보이는 거죠..
(음 ..생각이 정리가 안됀다....하여간 좋은 글 감사합니다)


   복제와 이에 파생되는 위험 [1]

엔지니어
2003/10/10

   이메일 추출기 프로그램 [엔지니어는 왜 안티를 포기했는가. 3.] [3]

엔지니어
200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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