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판매리포트

 


안티운동과 노동가치설 그리고 한계혁명

1776년 애덤스미스가 ‘국부론’을 발표하여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후로 영국에서의 경제학 이론체계를 고전파 경제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영국에서 영국의 경제현상을 설명하면서 그 체계를 잡아가기 시작했던 이유는 물론 영국의 산업혁명 때문이며 산업혁명과 공업화는 그 이전의 농업사회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고 생각할 필요도 없었던  새로운 경제현상들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게 하였습니다.

당시의 고전파 경제학의 근간을 이루는 이론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동가치설’ 이었으며 애덤스미스는 한 상품의 교환가치가 그 상품에 투하된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동가치설’은 고전파 경제학자인 ‘리카르도’나 자본주의 비판을 시도했던 마르크스마저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장의 가격이 형성되는 매커니즘을 설명하려는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거래가 활발해질수록 상품가격의 이론과 실제 거래되는 가격에서 나타나는 괴리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이 시장경제의 가장 기초적인 요소인 상품 가격의 형성조차 설명하지 못하던 현실은 결국 1871년 제번스, 맹거 등의 오스트리아학파를 필두로 한 신고전학파의 한계효용모형과 무차별곡선모형에 의해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상품의 가치가 생산에 얼마나 시간과 비용을 들였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얼마만큼의 만족을 주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경제학자들의 시각은 바뀐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지만 당대의 내노라 하는 천재 경제학자들조차 이를 깨닫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는 사실만을 보아도 대단히 중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제학의 전체 역사에서 볼 경우에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던지 이 신고전학파의 등장을 경제학사에서는 ‘한계혁명’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무차별곡선모형을 경제학사에서 안착시킨 주인공은 바로 공학자이며 동시에 경제학자였던 '파레토'였습니다. 80대 20의 법칙으로 다단계판매원분들에게 자주 거론되는 파레토의 무차별곡선모형이 판매원은 사재기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논증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는 점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입니다. 물론 이를 알고있는 판매원분들은 거의 없지만 말입니다.)

최근에 ‘젖은낙옆’님이 올리셨던 칼럼의 내용 가운데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유료 문서를 제작하고자 한다면 그 시간과 노력에 비해서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에 만류하게 될 것 같다…"

맞습니다. 잘먹고 잘살아라는 비아냥을 들어가며 호기롭게 문서제작을 선택 하셨는데 '젖은낙옆'님이 대면한 진실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몇 개의 문서를 올렸는데도 하루에 한 개가 팔리면 다행인 상황이니까 말입니다. 그것은 ‘젖은낙옆’님에게 뿐만 아니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미 여러 차례 말씀 드렸듯이 그 시도는 ‘진실’을 대면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젖은낙옆'님에게 무엇보다도 큰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님은 유료문서를 제작하는 시도를 함으로써 그동안 가식적으로 님을 대하던 안티다단계커뮤니티의 수많은 사람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지요. 그것보다 더 가슴아픈 것은 님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안티다단계활동이란 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초라한 숫자로써 확인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보느니 차라리 진실을 보지 못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후회하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식적인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별로 가치도 없는 가식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던 과거가 더 나았다고 생각될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러나 단언컨데 ‘젖은낙옆’님이 느끼시는 공허함은 다단계판매원분들이 사업을 포기하는 순간에 느끼는 기분과 같은 성격의 것입니다. 저는 제 스스로가 안티다단계커뮤니티라는 가식적인 세계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수도없이 후회했지만 유료문서를 제작할 결심에 대해서는 한 번도 후회해 본 일이 없으며 유일하게 가치가 있었던 일로서 인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단계판매시장과 관련된 정보를 만드는데 젖은낙옆님이나 제가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문서를 구매하시는 분들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다단계판매원분들이 자사의 상품을 어떻게 홍보하고 열정적으로 판매원활동을 하는지는 소비자들에게는 관심없는 일이며 안티커뮤니티에서 얼마나 열심히 활동을 했는지는 시민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입니다. 제공하는 정보의 가치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지요 제가 휴대폰을 교체하고자 할때 공장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휴대폰을 조립했는지 몇명이 했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단말기만 마음에 들면 그만인 것입니다.

가치를 정할 수 있는 분들은 바로 문서의 구매자입니다. 무료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무료여야 한다는 등의 안티운동의 노동가치설, 열심히 만들었는데 왜 안팔리나 그렇게 시간을 들였는데 왜 몰라주나 하는 문서제작의 노동가치설은 억지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런 이야기들은 100년 전에나 통하던 것들입니다.
[엔지니어]
2007-05-30 05:55:07
   



젖은낙엽
2007-05-30
09:34:11

 
요즘 제가 느끼고 있는 공허함의 실체를 정확히 짚으셨군요.(웃음) 가을 정도를 예상으로 올해 계획중인 마지막 문서가 완성될듯 합니다.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사람은 문서를 구매하고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없다면 외면하는 것이 최선이겠지요.



젖은낙엽
2007-05-31
02:36:37

 
귀하의 칼럼을 읽고 생각을 좀 해봤는데..'노동가치설'이 옳다고 믿든 '효용가치설'이 옳다고 믿든 그것은 각자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다만, '노동가치설' 보다는 '효용가치설'로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것이 더 옳겠더군요.

사람들은 (저를 포함하여) 시장의 만족도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따라서 보상 또는 평가를 받는것이 공평하다고 믿는 구석이 있나 봅니다.(웃음)



엔지니어
2007-05-31
09:03:59

 
경제학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 학문이 아니라 현실을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입니다. 젖은낙엽님의 바램과 문서에 대한 사용자들의 가치부여 현실은 별개의 것입니다.

참고로 노동가치설과 효용가치설은 상황에따라 취사선택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경제학사에서 이것을 '한계혁명'이라 부른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노동가치설과 효용가치설을 취사선택하겠단는것은 천동설과 지동설을 취사선택하겠다는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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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낙엽
2007-05-31
12:04:58

 
'노동가치설'과 '효용가치설'은 분명 취사선택 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보편적으로 효용가치설에 거부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가란게 자신의 노력 여하와는 상관없이 수요자의 주관적 만족도에 달려 있음을 받아들이기가 불편하기 때문이겠지요...(또 다른 이유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직접 체험해 본 바에는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분명 노동가치설에 대한 믿음을 피력하는 모습은 주변에서 흔하게 목격이 됩니다. 또한 그것은 분명 각자가 선택하는 믿음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노동가치설이 경제학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이념에 더 가깝다는 표현을 사용했는지도 모르지요. 귀하께서 노동가치설에 대한 주장이 억지에 불과하다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확실히 가치라는 것은 자본주의하에서는 '가격'으로 객관화가 되더군요. 초라한 숫자로서 매일마다 확인이 가능하지요. 더불어 그토록 많은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주었음에도 사무국 후원금이 전무하다시피 한 이유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수 있었고 말입니다. 그때는 단순히 피해자들이 여력이 없기 때문에..정도로만 치부했을 따름이지요.

어쩌면 지금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알 수 있었을텐데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불편해서 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엔지니어
2007-05-31
15:06:50

 
대중은 삶에서 자신이 먹고 마시고 입고 자는 모든 행위에서 비용을 소요하면서 효용가치설에 맞게 움직이지요. 그러면서도 노동가치설에 대한 믿음을 피력하고 있다면 그는 무식하거나 혹은 가식적이거나(그런 주장을 하는 것 자체로 별도의 전략적인 이익을 얻는) 둘 가운데 하나일것입니다. 저는 가식적인 사람이라는데 한표 걸겠습니다. 왜냐면... 이것을 모른다고 하기에는... 너무 무식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지요.

제가 안티다단계커뮤니티의 활동을 무식하다기보다는 가식적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연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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