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판매리포트

 


'착신아리' 전송하면 넌 죽지않아!

[Photo] 친구라고? 웃기지 마!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라는 뜻의 일본영화 [착신아리] 시리즈는 휴대폰을 통해 죽음이 전달된다는 것을 공포의 기본 토대로 삼는다.

완결편은 부산으로 수학여행을 온 여고생 '마츠다 아스카'가 죽음의 메일을 핸드폰으로 보내고 메일을 수신한 인물들이 '죽음의 착신'이 포워드(전송)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전송하면 넌 죽지 않아'라는 문자 메시지는 죽음의 저주를 남에게 떠넘겨 자신의 목숨을 건지라고 부추기고 있으며 결국, 등장 인물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 친구들을 희생시킨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죽음의 메시지를 복제해야만 한다.

한가롭게 수학여행을 즐기던 아이들은 그때부터 아비규환에 빠진다. 광기어린 눈빛으로 "나한테는 메시지 안 보낼 거지?" 라고 친구를 은근히 협박하는가 하면 폭력을 써서라도 친구의 휴대폰을 빼앗으려 한다. 하지만 이 죽음의 게임을 해결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죽음의 착신'을 받은 누군가가 친구들에게 전송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하면 '죽음의 착신'은 자신의 희생으로 멈출수 있으며 메시지가 지니는 복제와 파생의 두려움으로부터 모두가 벗어날수 있다. 그러나 이미 '죽음의 착신'이 발송 된 이상 현실적으로 이 게임은 그 누구도 멈출수 없다.


*왜 '죽음의 착신'은 멈출수 없을까?

모든 해답은 '게임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죽음의 착신' 게임에 참여한 여고생들은 서로간의 협력을 통해  합의를 지키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실제 합의가 지켜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만약 여고생들이 '협력적 게임'으로 갈 경우 죽음의 고리를 끊을수 있는 '집단적 합리성'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에도 결국은 배신과 배신으로 치달아 '개인적 합리성'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반복성 게임과 일회성 게임

'죽음의 착신' 게임이 반복성 게임이 아니라 일회성 게임이라는 것을 먼저 염두해 두자. 필자는 이미 '침묵의 카르텔'이라는 칼럼을 통해 '반복성 게임'하에서는 서로가 협력하여 '집단적 합리성'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그러나 '죽음의 착신'은 자신이 수신한 메시지를 정해진 시간내에 자신이 아는 누군가에게 보내기만 하면 자신은 그 게임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일회성 게임'이다.


*'죽음의 착신' 그 일회성 게임에 참여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할때 역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당사자에게 "합리적 최선의 전략"은 협조 보다는 변절이라는 것이 '일회성 게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착신아리'속의 여고생들이 합의를 지키는 것은 이미 '죽음의 착신'을 받은 희생자의 개인적 견지에서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서로간의 공조를 통한 '협력적 게임'으로 나아갈수가 없다. '합리적 선택'에는 '이기의 논리'가  지배한다는 것이 바로 이 "게임의 이론"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리고 과연 여기서 '합리적인 선택'은 무엇이 되겠는가?


* '제로섬 게임'

이 영화는 경제학적으로 어느 한 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 쪽은 반드시 손해를 본다는 인식에 기초했다는 점에서 '제로섬 게임' 의 논리라 할수있다. 나아가서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 되는 것이며 타인의 손실은 자신의 이익이 된다는 원리가 적용된다. 필자는 제로섬 게임을 절대 권장하지 않는다. 투기로 변질될 위험성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우선 원금에 대한 안전이 보장된 다음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지, 높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안전을 도외시 할 수는 없다. 자칫하면 이익은 커녕 손실만 입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위험에도 불구하고, 고수익을 노리는 사람들은 서슴치 않고 일확천금의 꿈을 품으며 갖가지 제로섬 게임에 뛰어든다.


*절친한 내 친구는 왜 나를 다단계에 소개했을까?

이제 당신은 왜 내 친구가 나를 소개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윗 글에서 찾을수 있다. '죽음의 착신'과 같이 다단계 판매원으로서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고자 '개인적 합리성'을 선택한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영화 '착신아리'와 다단계 판매시장이 지니는 공통점은 '개인적 합리성'을 위해서는 '게임의 참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 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영화 '착신아리'의 '죽음의 착신게임'이나 다단계 판매라는 '시장게임'이나 그리고 그 게임에 참여한 '여고생'이나 '다단계 판매원'이나 지극히도 합리적인 선택을 한것에 불과하다는 간단한 사실을 당신은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친구를 설득 시키는데 있어 당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길임을 잊지마라.


*전략적 행동을 예측하라.

이미 '죽음의 착신'을 받은 여고생은 자신의 친구들에게 자신이 '죽음의 착신'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이 '죽음의 착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릴 경우 다른 친구들 또한 '개인의 합리성'을 추구하고자 메시지를 발송하지 못하도록 핸드폰을 빼앗을 것이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리하면 '죽음의 착신'을 받은 여고생은 타인에게 '전송'하지 못함으로 인해 자멸하게 된다. 그렇기에 '죽음의 착신'을 받았음을 숨기고 태연히 행동하는것이 '전략적 행동'인 것이다. 다단계 판매원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는 자신이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만을 이야기 할뿐 자신이 얼마의 돈을 쏟아붓고 있는지는 당신에게 절대 이야기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단계 판매원의 '전략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젖은낙엽]
2007-01-11 01: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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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스웰의 도깨비 [Maxwell's demon]

젖은낙엽
2007/01/11

   투견이 합법이면 개새끼가 죽을일은 없다는것이냐?

젖은낙엽
2007/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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